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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 출신
1927년 황해도 출신인 그는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20대 초반, 그의 끼를 눈 여겨 본 부모님의 뜻에 따라 해주음악전문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합창단원으로 무대에 설 때, 노래만 하는 게 아닌 진행을 겸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MC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2. 6.25전쟁
한창 음악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발발한 6.25전쟁으로 고향에 머무르던 그는 모병을 피하려고 인근 마을에 숨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여느 날과 같이 숨으러 나가는 그에게 어머니가 “얘야, 이번엔 조심해라” 라고 하시며 가래떡을 주었던 게 마지막 가족의 모습이었다. 군함을 타고 부산까지 피난을 가면서 지금의 이름인 바다 해자를 예명으로 쓰기로 결심했다.
3. 통신병
부산항에서 앞사람만 따라다니다가 군입대를 하게 된 그는 통신병으로 복무하면서 ‘1953년 7월 27일 휴전한다’ 라는 메시지를 직접 타전하기도 했다. 그때 당시 쓰던 모스 부호를 말년에도 기억해냈다.
4. 송기사
1955년 가수로 데뷔한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MC역할뿐만 아니라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코미디언으로 대활약 했으며 다수의 영화 및 드라마에 배우로도 출연했다. KBS의 전신인 동양방송 AM라디오 채널에서 매일 아침 생활정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으면서 운전자들 사이에서 ‘송기사’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매주 일요일 라디오 공개홀에서 공개방송을 열기도 했는데, 이 때 노래 경연 코너가 있었고 훗날 전국노래자랑 진행의 밑거름이 되었다.
5. 전국노래자랑
이후 그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들을 잃게 되었는데, 이 충격으로 14년간 진행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하차하게 되었다. 그 후 슬픔을 잊기 위해 전적으로 전국노래자랑이라는 프로그램을 맡아서 진행하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202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34년동안 진행하여 25년간 가족오락관을 진행한 허참을 제치고 국내 단일 TV 프로그램 ‘연속 진행’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전국노래자랑은 많은 사랑을 받아 일본, 미국, 평양에서까지 공연된 적이 있으며 제일 멀리 공연을 간 곳은 1995년 파라과이 편이다.
6. 무소유
송해는 자동차, 휴대폰, 큐카드 3가지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피처폰조차 가지고 있지 않아 우스갯소리로 섭외 연락을 하는 것보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게 더 쉽다는 얘기도 있었다. 전국노래자랑 촬영을 위해 특정 지역에 가게 되면 전날에 미리 내려가서 그 동네 목욕탕에서 주민들과 함께 목욕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7. 주당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주당이라는 그는 주량이 무려 소주 다섯 병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이와 관련된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전국노래자랑 악단장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의 주량을 따라가지 못해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숨었는데 송해가 마스터키를 들고 숙소의 방문을 하나하나 따가면서 악단장을 찾았다고 한다.
일명 뽀식이로 유명한 코미디언 이용식은 송해 할아버지와의 술자리에서 큰 그릇을 상 밑에 숨겨두고 술을 마시는 척 그릇에 따라 버렸는데, 송해 할아버지가 한참 있다 “넌 꼭 그렇게 모아서 마시는 거 좋아하더라”라는 말을 해 섬뜩했다고 한다.
8. 송해길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종로구에 그의 이름을 따 조성된 ‘송해길’을 거닐고 식사를 했으며, 그 곳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도 정상 출근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대중들은 아직 그와의 이별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9. 마지막 전국노래자랑
2022년 5월 15일 방영된 전국노래자랑에서 생애 마지막 클로징 멘트를 남겼다. 요즘 철도 좋고, 여러분들 뭐 오랫동안 시달리고, 답답했습니다. 사실 이 화창한 계절이 돌아왔으니까, 여러분들 활짝 열린 세상 나오셔서 금수강산의 맛을 실컷 보시기 바랍니다. 아, 시간이 다 되었죠? 네, 자 저희들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0. 정치
제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며 “남자 대통령들만 나오니까 서로 싸우고 뒷얘기가 많아 여자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얘기했다. 영화 ‘송해 1927’ 사무실 모습에서 박근혜 사진 스크랩이 한 벽면을 차지하는 모습이 비춰 지기도 했다. 박근혜를 지지했다고 해서 보수정당을 지지했던 걸까? 송해 할아버지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이 깊어 따로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실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그의 평생 소원은 고향인 황해도 재령군에 다시 와서 전국 노래자랑을 여는 것이었으나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그리웠던 어머니, 아들, 아내의 품에 안기었다. 이제 전국노래자랑이 아닌 천국노래자랑을 외칠 수 있는 송해 할아버지. 그 곳에서는 새처럼 자유롭게 고향 땅에 방문하길 바라본다.